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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 호두파이

숙이 호두파이

지나다니면서 항상 궁금했던 가게였다. 호두파이만 파는 가게가 이런 일산 주택가에 있는게 신기했고, 손님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고, 또 안 망하고 고 내가 지나다닌 지난 4년간 계속 영업하는 가게였기 때문이다. 옆 동네인 풍동에 살다가 올해 식사동으로 이사왔는데, 기회가 되서 한 번 먹어보게 되었다. 혼자서는 못 사는 물건도, 룸메이트랑 같이라면 두려울게 없는 것이다. 마침 집에 새로 사온 원두도 있겠다 하니, 둘이 작당하고 맛이나 보자 하고 작은 6천원짜리를 사왔다. 질만 좋으면 자주 사 먹을 것이라.

재료는 좋은걸 쓰는 것 같았다. 서울우유의 무가염 버터, 설탕 대신 쌀엿을 100%, 그리고 국산 계란과 캘리포니아산 호두를 쓴다 한다. 베이킹이나 LCHF 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국내에서 진짜 ‘버터’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은 서울우유에서 나오는 버터 한 종류이다. 나머진 모두 수입품이다. 가격이 꽤 나가기 때문에 집에서 홈 베이킹 하는 분들도 루어팍 같은 수입 버터를 많이 사용한다. 나의 경우에는 베이킹은 안 하고 빵에 곁들여 먹거나 버터 향 낼 때 쓰기 때문에 향이 좋은 프랑스산을 주로 먹고 있다. 기회가 되면 버터에 대해서도 한 번 포스팅 해볼까 싶다.

호두는 꽤 들어있다. 가격을 생각하면 많은 편이라 할 것이다. 호두에서 묵은 냄새 같은건 나지 않는다. 눅눅하지도 않다. 잘 볶여있어서 탄 것도 없다. 제법 고소한 맛이 난다. 필링의 질감은 수분이 꽤 많다. 계란을 제법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에그타르트를 먹는 느낌이다. 부들부들하니 푸딩 같기도 하다. 우유도 쓴다 써있는 걸 보니 아마 비슷한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주된 맛은 호두, 계란, 우유의 맛이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쌀엿을 써서 그런지 당도는 상당히 낮다. 달달한 느낌은 거의 없다. 강정 같은 느낌을 생각한다면 그런 느낌은 아니다. 쌀엿 특유의 은은한 단맛이다. 한입 물었을 때 파삭하고 강한 단맛이 올라오는 그런 파이는 아니다. 부드럽고, 호두가 간간히 씹히면서 끝에 단맛이 살짝 있는 그런 느낌이라 하겠다.

파이 지는 파삭하니 괜찮다. 결도 있고 뭐 나쁘지는 않다. 쿠키를 다져서 만든 그런 종류는 아니고, 일반적인 눌러서 구워내는 파이지이다. 버터를 아주 많이 써서 파삭한 기름이 배어나오는 느낌은 아니다. 눅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파삭한 느낌은 아니다. 소금기나 단 맛은 많지 않다. 밀가루와 버터의 맛이다. 서울우유 버터가 향이 강한 버터가 아니다 보니 버터의 향은 강하지 않다. 밀도감이 있지는 않고, 그렇다고 페이스트리처럼 가볍지는 않은 그 중간 정도라고 하겠다.

커피와 같이 먹기 좋다. 이 때 커피는 굳이 강한 커피가 아니어도 어울리는 것 같다. 파이 자체가 맛이 강한 편은 아니어서 커피 맛을 누르지 않는다. 산미가 있는 커피도 생각보다 괜찮다. 오히려 강하게 볶은 커피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기타

주인 두 분이 아마 부부가 아닐까 싶은데, 꽤 유쾌하시다. 파이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신이 파는 물건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은 언제나 사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개인적인 입맛에는 계피가 좀 더 들어가고, 좀 더 단 맛이 있는 편이 좋지만, 부드럽고 은은한 맛도 나쁘지 않았다. 저렴한 가격의 음식들은 자극적이거나, 혹은 다른 향으로 맛을 감추려고 하는데, 여긴 그런게 없다. 정직한 맛이다. 심심할 수 있지만 그런 게 또 좋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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